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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景福宮)의 궁궐(宮闕)터는 길지(吉地)인가
등록날짜 [ 2019년10월17일 20시07분 ] | 최종수정 [ 2019년10월18일 01시30분 ]


 

경복궁(景福宮) 궁궐(宮闕) 위성사진이며 황색 원 표시의 일부가 음택명혈길지처(陰宅明穴吉地處)입니다.

 

 

경복궁(景福宮)의 궁궐(宮闕)터는 길지(吉地)인가?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를 설득(說得)하고 무학대사(無學大師)와 대립(對立)까지 하면서 세워진 조선(朝鮮)의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의 터는 진정(眞情)한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명당길지(明堂吉地)일까?

 

1392(壬申)年에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창건(創建)하고 한양(漢陽)에 500여 동에 이르는 궁궐(宮闕)의 많은 건물(建物)과 미로와 같은 길로 이어져 있는 정궁(正宮)을 지었다.

 

1592(壬辰) 年度 선조(宣祖) 재위(在位) 25年에 일어난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불(火)에 따 없어졌다가 고종(高宗) 때인 1867(丁卯)年에 재건(再建)되었다.

 

경복궁(景福宮)은 한(恨)이 많은 곳(處)이기도 하다.

임금이 머무는 건청궁 "장안당"과 명성황후가 머무는 건청궁 "곤녕합"이 있는데 1895(乙未) 年度 고종(高宗) 재위(在位) 32年 10月 8日 일본(日本)의 낭인(浪人)들이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의 서쪽 담을 통해 침입(侵入)하여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살해(殺害)하였다. 그들은 시해(弑害) 후 참으로 천인공노할 만행(蠻行)을 저지른 것이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전에 경복궁(景福宮) 후원이 있던 자리로서 북쪽의 "신무문(神武門)" 뒤로 후원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왕(王)과 신하(臣下)들의 활궁 장으로서 활용(活用)하고, 인재(人才)를 뽑는 과거(科擧)시험 장소로 사용(使用)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일제(日帝) 강점기(强占期) 남산에 있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경복궁(景福宮)으로 옮겨 청사(廳舍)를 지으면서 이 나라의 기운(氣運)을 빼앗으려는 의도(意圖)가 숨겨져 있던 것이다. 그리고 나라의 국운(國運)을 위해서는 "청와대" 터는 반드시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해방(解放) 후(後)에 궁궐(宮闕)후원의 시설은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했었고 그 이후에 새로 건물(建物)을 짓고 현재의 “청와대”로 불리게 되었다.

한양(漢陽)의 경복궁(景福宮) 터에 정궁(正宮)의 자리를 잡은 정도전(鄭道傳)은 명당(明堂) 중의 명당(明堂)이라 하며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주장(主張)을 하였다.

 

반면에 조선건국(朝鮮建國) 시기 정도전(鄭道傳)에 맞서 “북악산(北岳山)”의 자락은 궁궐(宮闕)터로는 적합(適合)하지 않다며, 무학대사(無學大師)는 “인왕산(仁旺山)”을 주산(主山)으로 삼고 동향(東向)으로 궁궐(宮闕)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强調)를 하였다.

 

정도전(鄭道傳)은 당시 조선(朝鮮)에서 알아주는 주역(周易)의 대가(大家)였으며, 이성계(李成桂)가 나라를 세울 운(運)을 타고 낫다고 하여 항시 이성계를 추종(追從)하였다고 한다. 그 무렵 무학대사(無學大師)는 이성계의 해몽(解夢)과 파자점(破字占)으로 왕(王)에 오를 것으로 예언(豫言)을 하고 풍수지리(風水地理)에도 능통(能通)하였다. 더불어 이성계(李成桂)에게는 좌무학(左無學)과 우삼봉(右三峰)이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당시 주역(周易)의 대가인 정도전(鄭道傳)이 왜 북악산(北岳山)기슭의 현재 경복궁(景福宮) 터를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복지(福地)라 했을까?

 

의문(疑問)이 가는 대목이다!

 

경복궁(景福宮)의 터는 풍수지리적(風水地理的)으로 양택명당길지(陽宅明堂吉地)가 아니며, 즉 묘지(墓地)를 조성(造成)할 수 있는 도반혈상급(道班穴上級)의 음택명혈길지(陰宅明穴吉地)이기 때문에 궁궐(宮闕)을 지어서는 안 되는 터이다. 집(宅)을 짓고 궁궐(宮闕)을 지으려면 양택방혈명당길지(陽宅方穴明堂吉地)라야 가능(可能)하다. 음택명혈길지(陰宅明穴吉地)에는 다만 사자(死者)의 묘지(墓地)로 활용(活用)함이 옳다.

 

위의 경복궁(景福宮) 위성사진을 보시면 “건청궁 복수당”과 “흥복전 권역 복원지 일부”와 “근정전 중심부”의 극히 일부분을 "황색 원"으로 표시된 곳이 음택명혈길지처(陰宅明穴吉地處)로서 혈판(穴判)이 협소하고 좁아서 양택(陽宅)으로 활용(活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자리의 혈상(穴象)은 천혈 인혈 지혈(天穴 人穴 地穴)의 삼단혈(三單穴)로서 음택지(陰宅地)이며, 묘소(墓所)를 조성(造成)하여야 합당(合當)한 자리에 궁궐(宮闕)을 건립(建立)함으로 인하여 나라에 국운(國運)의 문제(問題)가 야기(惹起)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무학대사(無學大師)는 “인왕산(仁旺山)”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북악산”을 좌청룡(左靑龍)으로 하고, 남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아 동향(東向)을 해야 한다고 주장(主張)을 하였다.

 

즉 “인왕산” 앞쪽은 좌우사(左右沙)가 보국(俌局)을 이루고, 수세(水勢)와 자웅(雌雄)을 한 곳으로서 집(宅)이나 궁궐(宮闕)을 지을 수 있는 양택방혈명당길지(陽宅方穴明堂吉地)를 결지(結地)하였으므로 궁궐(宮闕)터로서 손색(遜色)이 없는 명당(明堂) 복지(福地)임이 분명(分明)한 터이다.

 

그러나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은 궁궐(宮闕)을 어찌하여 동향(東向)을 하려고 하느냐며 반박(反駁)하며 “북악산(北岳山)”을 주산(主山)으로 남향(南向)을 강력히 주장(主張)하였다. 그로 인하여 지금의 경복궁(景福宮)의 궁궐(宮闕)을 짓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집터의 명당(明堂) 터와 묘지의 명혈지(明穴地) 자리는 기(氣) 에너지의 혈상(穴象)이 많이 다름으로 심안(心眼)의 관법(觀法)으로 알 수가 있는 것이며, 또한 개안(開眼)이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결론적(結論的)으로 경복궁(景福宮)의 터는 탁기(濁氣)가 많아서 궁궐(宮闕)로서는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복지(福地)가 될 수가 없다.

 

 

글쓴이; 도가풍수연구원장(到家風水硏究院長)

 

 

<정의로운 한국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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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 기자, 메일: hkn0203@daum.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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